[소설] 인생_위화(부제 活着; 살아간다는 것)
✐장르 : 고전 / 중국 소설
✐ 언젠간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위화의 대표작..!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많은 생각들이 들었지만 정말 제목인 인생에 대해 잔잔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던 소설
[네이버 도서]
[밀리의 서재]
인생이라는 작품은 일정 주기마다 개정판이 나오고 해당 개정판 별로 작가인 위화의 말이 앞 부분에 들어간다.
그 글에서도 작가가 지향하는 인생의 방향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나는, 작가로서, 동일한 내 작품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생활이 변했고, 감정도 변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앞서 읽은 책들처럼 해석해야 할 거리가 많은 작품은 아니었으나 소설이기 때문에 인물들이 하는 행동이나 떡밥..? 같은 부분 정도 생각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은 인생 그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자기 아비를 감쌀 줄 알다니….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니까.
“춘성, 살아 있어야 해요.” 춘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전은 안에서 울면서 말했다네.
“우리한테 목숨 하나 빚졌으니까, 당신 목숨으로 갚으라구요.”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위의 구절들을 읽으면서는 인생의 따뜻한 면을 담으려고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함이 충전되기는 했지만 왜인지 어색한 느낌..? 기시감이 들었었다. 푸구이 노인이 젊은 시절 겪었던 박대나 집 압류 등에서 삶의 고초를 담은 부분을 읽을 때는 그건 푸구이 노인이 자초한 일이고, 인과관계에 따라 그러한 노름판을 벌이고 무모한 짓을 했기에 응당 따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지만 끊김없이 당연히.. 이렇게 되는구나 했는데 인용한 부분들은 정말 따뜻한 용서와 이해인데도..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염세적인 탓일까..ㅎ)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왔지.”
노인은 또 한 번 소를 불렀다. “푸구이!”
그러나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나는 이 부분이 푸구이 노인이 그렇게나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쉬씨 집안 조상들의 발전상의 최정상인 소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성장했다는 뜻은 아닐까..? 했다.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표현 등도 '그만큼의 역경과 어려움을 밟고 이겨내는 힘과 노력, 능력은 정말 힘든 것이기에 많은 사람이 갖고 있지 않고 기르기 어려운 능력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경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나아가야 한다' 는 인생의 주요 모토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푸구이의 젊은 날을 함축하는 말
“꼬마 녀석이 정말 기막히게 말을 잘하네.” “펑샤가 말을 못 해서 진 빚이죠.”
이 소설 내에서 자전이랑 펑샤가 제일 불쌍한 인물이 아닐까자전이 겪어온 상황들과 그에 대한 대처를 보면 모든 인생을 통틀어 만날까말까한 정말 도덕적 이상 그 자체인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펑샤도 어린나이에 희노애락은 물론, 온갖 고초를 다 겪고 겨우 좋은 이를 만나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다가 죽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펑샤의 아이가 저렇게나 말을 잘 할 때 나도 괜히 울컥하고, 뿌듯하고, 감동적이고... 그랬다.
<옮긴이의 말 中>
모든 인간적 삶의 문제는 개인과 그 운명의 우정으로 맺히고 풀어지는 것임을 죽음이라는 삶의 극단을 연속해 보여주는 과정에서 제기하고 있다
해방 후 푸구이의 전 재산을 도박으로 갈취해 간 룽얼의 죽음 속에서 푸구이는 운명이라는 것과 처음으로 절실하게 마주한다.
주인공 푸구이는 그 운명을 거역하지도 않지만 결코 그것에 무릎 꿇지도 않는다.
사랑과 우정, 인간의 그 보편적 삶의 방식이 소설의 서사적 근간을 이루면서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위화는 삶이란 이 원론과도 같은 사랑과 우정을 힘으로 운명, 역사적 현실 앞에 때로는 물러서기도 하지만 결코 늦출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이마를 맞대고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서평이 초라해질 정도로 옮긴이의 말이 너무 멋져서 인용해보았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다른 판에도 담겨있는진 모르겠지만) 특별판을 읽을 사람들이라면 꼭 마지막 부분까지 남김없이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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