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노사이드 _2 인간의 잔혹성과 선의 성질
저번 글에서 인간의 잔혹성과 인간이 가진 "선"의 성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라는 언급을 스치듯 했었다.
학생 때부터 내가 완전하게 입장을 굳히지 못한 1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성선설 vs 성악설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질문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질문을 던질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성선설이라고 생각해, 나는 성악설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답을 내리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성무선악설...?을 운운하며 나는 진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은연 중에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내 입장' 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성선설, 성악설, 틀린 의견이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이 보편적인 질문에 나의 입장은 있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내 결론을 지어준 문장은 바로 이 책에 있었다
p397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개인의 이익보다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반대의 유형보다 현저히 적고,
실제로 선하다 말하는 행동을 한 사람은 그게 당연할지라도 큰 보상을 받는다(그게 칭찬이든 상이든 명예든)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범죄들을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악할 수 있는가. 또는 이러한 범죄를 교육하는 기관은 없는데 대체 범죄자는 어디에서 나와 사회에 드러나는가'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고
만약 사람이 선하게 태어났다면 요즘 점점 어려지는 범죄 연령은 무엇이고, 왜 우리는 당연한 것(윤리)을 가르치며, 도덕이라는 것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나는 초면에 모든 경계를 풀고 사람을 낙관적으로 대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질문을 자주 던지고, 인류애와 정을 정말 크게 평가하는 사람이기에 더더욱이 저 문장이 내게 와닿았던 것 같다.
이하의 글들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다
p24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p22 자신은 쓰고 버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p213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권력을 정말 잘 풀어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제노사이드 속에는 정부에서 계획하고 지시하는 여러 사건들을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읽으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이렇게나 고능한 다수가 고려해도 계속 되풀이되는 문제는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위의 문장에서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p231 목표는 이 세상에 한 개체밖에 없는 인류종. 단 한 사람을 "제노사이드" 하는 것이다
p255 가족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생물종이라는 동료가 전부 죽었다고 깨달게 된 순간, 얼마나 외롭고 절망스러웠을까?
사실 초반에는 '누스'라는 존재가 인간 초월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생물화해서 생각했던 것 같은데이 문장을 읽고 '누스'도 하나의 생명체고 존재고, 3살 아이임을 다시 인지하게 되었었다.
p395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p423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p433 AK소총을 난사하며 돌격해 오는 것은 소년병 집단이었다. 10세 전후의 작은 남자아이들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예거를 죽이려 돌진했다.
내가 예거의 상황에 놓여서 너무나도 날 것 자체의 인간성을 접했다면
얼마나 소름이 돋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도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p448 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 조차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p 494 노트북을 가지러 온 것은 나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나를 위험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해 그랬던거죠?
p554 한 가지만 말해보자면 실패없는 인생따위는 있을 수가 없으며, 그 실패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실패한만큼 강해진다. 그것만은 기억해두렴 (고가겐토의 아버지, 고가 세이지의 유서에서)
그러면 아무 담보물도 없이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하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의 플랫폼에서 떨어지는 외국인을 구조하거나 아니면 목숨 걸고 신약 개발에 뛰어든다던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극히 소수 아닌가. 그것도 일종의 진화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구태여 누스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그런 사람과 길에서 지나쳤을 수도 있겠군.”
진화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도 꽤나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책의 중간중간에 누스의 도덕성에 대해 조금씩 언급한 것도 이 말을 위한 빌드업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내 머리를 띵 하게 만든 구절..!
고양이라도 기르지, 뭐.”
(또 나를 웃참하게 만든 구절, 예거답게 담담하게 누스를 받아들였다는게 느껴져서 캐릭터 해석이 스스로 되는게 좀 신기해서 웃겼다)
콩고내전 (콩고전쟁)
3차에 걸쳐, 1996년부터 2003년까지의 발생. 실제 콩코 내에서 일어났던 여러 위기들은 196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규모와 피해정도가 커서 아프리카 내 세계대전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권력 전쟁이었던 르완다 내전(1994) 이후 투치족의 승리로 피난민이 된 후투족들이 콩고로 넘어와 난민캠프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에 투치족이 자이르까지 넘어와 후투족을 학살하고, 무장단체가 학살을 하는 등 그야말로 여러 세력과 정권이 뒤섞여 벌어진 대난투극이었다.
피그미족
피그미족은 실제로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저신장 종족이다.
문명과 동떨어지고 현대적 삶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무지하고 비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멸종위기의 피그미족에서 미래의 인류종이 탄생했다는 설정에도 작자만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린 결말을 선호하진 않지만 작품 내에서 없는 인과를 만들어가며 해석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문명에서 가장 먼 곳에서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진다.. 뭐 그런 식의 표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최근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 뚜비두~도 피그미 족이라고 한다
(공장 노동자로 묘사되는 것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어 움파룸파로 수정되었다고 함)
1번째 서평에서 교회 학살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했었는데, 2005년 취재된 피그미족의 학살 현장을 접하니 오히려 완화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피그미를 먹으면 힘이 생긴다, 피그미 여인과 잠을 자면 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미신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겁탈 당하고 아이들은 절구통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인육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는 더 잔혹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같은 인류종이 벌이는 일임에 추가 조사를 하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서평은 여기서 마무리_!
서평을 올리면서 책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꾸준히 읽은 책들을 기록해볼 생각이다
누군가에겐 유익한 정보가 되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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